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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다리

영도다리, 나의 20대를 기억하다 배현공 나의 20대는 하루에 시내버스가 두 번밖에 다니지 않던, 깊고 조용한 산골에서 시작되었다. 면사무소에서 근무하며 보낸 날들. 마주치는 얼굴은 늘 정해져 있었고, 창밖의 풍경은 사계절 내내 단조로웠다. 그러나 그 시절의 나는 외롭지도, 허전하지도 않았다. 내 곁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그와 함께한 시간은 오래된 시냇물처럼 잔잔했다. 특별한 이벤트도, 눈부신 순간도 없었지만, 일상 하나하나가 내겐 설렘이자 위안이었다. 산길을 나란히 걷고, 해 질 녘 고요한 마을을 함께 산책하던 시간 들. 세상은 조용했고, 우리의 사랑도 소리 없이 깊어져 갔다. 화려함은 없었지만, 곁에 있는 그 사람 하나로 충분했던 시절이었다.그러던 어느 날, 그는 군인이 되어 부산으로 떠..

나의 인생글 2025.05.22

인연의 무게

배현공 평온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종종 주변의 인연을 당연하게 여긴다. 매일 반복되는 일과 속에 익숙한 얼굴들, 언제나 곁에 있을 것 같은 존재들을 우리는 별다른 의식 없이 지나친다. 하지만 인생은 예기치 못한 순간, 그 인연들의 소중함을 뼛속 깊이 깨닫게 하는 놀라운 방식으로 다가온다.작년 가을, 남편과 함께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났다. 스페인.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찬란한 햇살 아래 펼쳐지는 이국적인 풍경, 수천 년 역사의 무게를 지닌 도시들, 그리고 그 속을 살아가는 정열적인 사람들. 하루하루가 감동이었고, 낯선 곳에서의 소소한 경험들마저 특별했다. 하지만 그 여행에서 내가 가장 강하게 느낀 것은, 다름 아닌 인연의 깊은 울림이었다.여행의 마지막 날, 우리는 두바이 공항에서 경유 비행기를 ..

나의 인생글 2025.05.22

설거지와 스티커

배현공 새로 사온 그릇이 백여 개가 넘었다. 박스를 열자, 그릇들은 하나같이 반짝이며 고운 소리로 서로 부딪혔다. 나는 장화를 신고 설거지 시설대로 들어가 하나하나 정성스레 그릇을 씻기 시작했다. 차가운 물 속에 손을 넣고 문지르다 보면 감각은 어느새 무뎌졌지만, 누군가 그 그릇에 따뜻한 밥을 담아 먹을 것을 생각하면 손이 절로 부지런해졌다.그녀는 내가 씻은 그릇을 정리해 말리는 일을 맡았다. 말없이 주고받는 손길 속에 일의 리듬이 생겼고, 그 조용한 호흡이 의외로 좋았다. 고된 노동이지만, 그 안엔 알 수 없는 평온함이 있었다. 그런데 문득,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잠깐 화장실에 갔겠거니. 하지만 그릇은 계속 쌓여가는데 그녀는 돌아올 기미가 없었다. 나는 고무장갑 낀 손을 ..

나의 인생글 2025.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