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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머문 단풍나무

가을이면 나는 붉게 물든 단풍 앞에서 가끔 걸음을 멈춘다. 바람에 흔들리는 붉은 잎새를 바라보고 있으면, 한때 누구보다 뜨겁게 사람들 곁을 지키며 살았던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K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K를 처음 만난 것은 내가 오랜 세월 평직원으로 근무하다 처음 간부가 되어 동사무소 사무장으로 부임했을 때였다. 동사무소는 행정의 최일선이라 주민들과 함께 부대끼며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때의 나는 젊었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당시 통장이었던 K는 나와 동갑내기로 유난히 손발이 잘 맞았다. 덕분에 나는 참 신명 나게 일할 수 있었다.세월이 흘러 내가 그곳의 동장으로 다시 부임했을 때도 K는 여전히 동네의 궂은일을 도맡으며 동 행정의 중심에서 헌신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매..

나의 인생글 2026.09.08

인생의 성적표

‘횟집’ 안쪽 창가에 대여섯 명의 중년 여성들이 마주 보고 앉았다. 어릴 적 같은 시골마을에서 함께 자란 고향 친구들이다. 특별히 귀티가 나거나 눈길을 끌 만한 이도 없다. 그저 재래시장 어귀에서 한 번쯤 마주쳤을 법한 평범한 얼굴들이다. 코로나로 한동안 만나지 못하다 오랜만에 만난 터라 모두 한껏 들떠 있었다. 그동안 나누지 못한 세월을 메우기라도 하듯 잠시도 말을 쉬지 않았다. 이쯤 살고 보면 누구의 가슴속에나 소설책 몇 권쯤은 얹혀 있기 마련이다. 세월에 따라 이야기의 주제도 달라졌다. 젊었을 때는 남편과 시댁 이야기가 단골 메뉴였다. 그런데 어느새 그 자리를 아들과 며느리, 손주 이야기가 차지했다. 세월이 흐르며 우리도 어느덧 친정어머니가 되고 시어머니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내 맞은편에 앉은 H..

나의 인생글 2026.08.27

[공부담 발표]

반갑습니다. 8단 배현공입니다.제가 오늘 발표할 공부담의 제목은 ‘갑옷을 벗고 빗속을 걷다’​입니다.부산울산교구 여성회 회장을 맡은 지도 어느덧 4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경계를 만나며 소중한 공부거리를 얻었지만, 오늘은 그중에서도 제 마음을 가장 깊이 흔들었던 한 가지 경험을 나누고자 합니다.긴 공직 생활을 마치고 구청 문을 나설 때, 저는 모든 직을 내려놓고 홀연히 ‘자유인’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급변하는 시대를 지나오며 맡은 바 소임을 무난히 완수했다는 자부심 때문이었을까요. 사회에 나가서도 무엇이든 잘해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넘쳤습니다.그 열정이 용광로처럼 타오를 무렵, 저는 부산울산교구 여성회 회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환경운동을 비롯해 여러 사업이 있었지만,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

나의 인생글 2026.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