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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성적표

‘횟집’ 안쪽 창가에 대여섯 명의 중년 여성들이 마주 보고 앉았다. 어릴 적 같은 시골마을에서 함께 자란 고향 친구들이다. 특별히 귀티가 나거나 눈길을 끌 만한 이도 없다. 그저 재래시장 어귀에서 한 번쯤 마주쳤을 법한 평범한 얼굴들이다. 코로나로 한동안 만나지 못하다 오랜만에 만난 터라 모두 한껏 들떠 있었다. 그동안 나누지 못한 세월을 메우기라도 하듯 잠시도 말을 쉬지 않았다. 이쯤 살고 보면 누구의 가슴속에나 소설책 몇 권쯤은 얹혀 있기 마련이다. 세월에 따라 이야기의 주제도 달라졌다. 젊었을 때는 남편과 시댁 이야기가 단골 메뉴였다. 그런데 어느새 그 자리를 아들과 며느리, 손주 이야기가 차지했다. 세월이 흐르며 우리도 어느덧 친정어머니가 되고 시어머니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내 맞은편에 앉은 H..

나의 인생글 2026.08.27

[공부담 발표]

반갑습니다. 8단 배현공입니다.제가 오늘 발표할 공부담의 제목은 ‘갑옷을 벗고 빗속을 걷다’​입니다.부산울산교구 여성회 회장을 맡은 지도 어느덧 4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경계를 만나며 소중한 공부거리를 얻었지만, 오늘은 그중에서도 제 마음을 가장 깊이 흔들었던 한 가지 경험을 나누고자 합니다.긴 공직 생활을 마치고 구청 문을 나설 때, 저는 모든 직을 내려놓고 홀연히 ‘자유인’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급변하는 시대를 지나오며 맡은 바 소임을 무난히 완수했다는 자부심 때문이었을까요. 사회에 나가서도 무엇이든 잘해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넘쳤습니다.그 열정이 용광로처럼 타오를 무렵, 저는 부산울산교구 여성회 회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환경운동을 비롯해 여러 사업이 있었지만,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

나의 인생글 2026.08.19

고운 치마저고리 입고 만나자

가을이다. 잎을 떨어뜨리는 나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마음에 남아 있는 가장 따뜻하고도 아린 기억, 바로 어머니의 모습이 조용히 떠오른다.언젠가 시골에 홀로 계시던 친정어머니를 부득이 요양병원에 모신 적이 있었다. 귀가 많이 어두워 소통이 쉽지 않았던 어머니는, 그 명랑하고 많던 말씀도 잊으신 채 얼굴에는 늘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사실 시골의 오래된 집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추운 날이면 수도가 얼어붙어 물이 나오지 않았고, 여름이면 마당에는 풀이 무성해 조금만 손을 놓아도 금세 폐가처럼 변하곤 했다. 냉동고에 먹을거리가 가득해도 입맛을 잃은 어머니는 혼자 음식을 만들어 드시지 못하셨다. 자식된 마음에는 모든 것이 갖추어진 병원에서 하루 세끼 따뜻한 식사를 하시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지만,..

나의 인생글 2026.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