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글

마산행 기차

늘 은혜로운 2024. 1. 5. 21:30

 

배현공

시골 면사무소에 다니고 있었다. 오지수당을 받는 첩첩산골이다. 몇 안되는 사람중에 만나는 사람들은 노인이 대부분이다. 한 폭의 정물화처럼 모든 것이 그대로 머물러 있다. 혼인이나 이혼신고를 하러 외지 사람들이 가끔 왔다. 이혼을 하러 오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그럴 때면 특급 뉴스거리가 되어 마을 전체가 술렁인다. 이외에는 늘 조용했고, 우리의 청춘과 젊음은 그곳에서 덧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토요일 오후 일주일내내 목마르게 기다렸던 공휴일이지만 마땅히 갈곳이 없다. 그렇다고 시골구석에서 보낸다는 것은 청춘에 대한 모독이다. 무엇이 못마땅한지 하늘은 잔뜩 찡그리고 있다. 그와 나는 무작정 버스에 올랐다.  시외버스가 하루에 두 번 밖에 오지 않는 곳이라, 그 버스를 놓치면 우리는 꼼짝없이 그곳에 갇히고 만다. 버스를 타고 일단 읍내까지 나왔다. 읍내만 나와도 세상 밖으로 나온 생동감으로 큰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나는 갑자기 기차가 타고 싶었다. 시외버스를 한 번 더 갈아타고 기차역이 있는 다른 소도시로 이동했다. 무작정 제일 먼저 출발하는 기차를 탔다. 마산행 기차였다. 

밤중에 마산역에 내렸다. 천둥번개와 함께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소리는 우리의 젊음을 삼킬 듯했다. 갑자기 도로가 없어지고 세상이 강으로 변했다. 가재도구가 물 위에 둥둥 떠 다녔다. 돌아오는 기차를 타고 바로 오자는 약속이 지켜질 리가 없었다. 기차에서 내린 수많은 인파들은 썰물처럼 빠지고 텅 빈 대합실에 그와 나 둘만이 남았다. 오라는 곳도 갈 곳도 없었다. 되돌아갈 수도 없다. 꿈을 먹고살던 20대의 패기는 어디로 숨어버리고, 당장 주린 배와 오늘 밤 잠자리가 걱정이었다.

신용카드가 없었던 때라 우리는 서로의 주머니에 동전까지 다 내밀었지만 천 원짜리 몇 개뿐이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선택은 하나였다. 오늘 밤을 무사히 보낼 집을 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우리는 무릎까지 오는 빗속을 헤매고 다닌 끝에 역 근처 허름한 여인숙을 찾았다. 손님은 없었고 주인인 듯한 중년의 여성은 쪽 마루에 넋을 잃고 앉아 있었다. 우리가 나타나자 흠칫 놀랐다. 이 빗속을 어떻게 뚫고 왔는지 신기한 듯 이리저리 훑어본다. 우리가 가진 돈으로 방 하나를 얻었다.

방이 해결되고 나니 덜컥 무서움이 엄습했다. 허물없는 친한 동료였지만 상대방은 나와 같은 20대의 건장한 청년이다. 그 당시의 사회 관념상으로 남녀가 함께 밤을 보낸다는 것은 큰 사건이었다. 오늘 이 일로 인해 앞으로 바뀔 내 운명을 생각하니 참담했다. 그는 여인숙 쪽 마루에서 자겠다고 했다. 봄이었지만 밤은 추웠고 게다가 온몸이 비에 젖었다. 정조가 아무리 중하다고 하나 사람의 목숨만 할까. 내가 설득시켜 일단은 방에 들어왔다.

따뜻한 아랫목에 앉으니 나도 모르게 스스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 보니 그는 젖은 겉옷을 입은 채 벽에 기대어 고개를 푹 떨어뜨리고 잠들어 있었다. 책임감만은 확실한 사람이구나. 잠든 평안한 그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동료가 아닌 믿음직한 남자가 보였다. 

예상하지 못한 낯선 곳에서 우리는 아침을 맞이했다. 햇살이 유난히 반짝였다. 어제 저녁의 그 공포는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그 지방에 살고 있는 친척을 찾아가 돈을 얻어왔다. 먼저 허기진 배를 채우고 인근에 있는 진해로 갔다. 

진해는 온통 무지갯빛이었다. 천지가 개벽을 하는 듯 세상은 흥청거렸고 넘쳐나는 사람들의 무리 속에서 우리는 활기찬 20대의 거친 숨을 내쉬었다. 

활짝 핀 벚꽃이 하늘을 가리고 세상을 덮어버릴 것만 같았다. 이어진 벚꽃터널은 우리를 새로운 환타지로 데려갔다. 한줄기 바람에 꽃잎은 꽃비가 되어 우리의 얼굴에 어깨에 머리에 마음에 까지 내려앉았다. 마음속 꽃잎이 그동안 수고했다고 토닥인다.

나는 짧은 스커트에 뾰족구두를 신고 있었다. 발뒤꿈치에서는 피가 흐르고 발이 퉁퉁 부었지만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신발을 양손에 들고 맨발로 종일토록 진해 시내 누볐다. 이 순간이 지나면 거대한 감옥에 또 갇히게 될 것이다. 유리 구두를 신은 신데렐라가 된 짧은 순간이지만 세상은 오로지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듯 했다.

활짝 핀 벚꽃처럼 우리의 젊음도 활짝 피었던 시기였다. 꽃잎이 세상 밖으로 고개를 내밀 듯 우리도 사랑을 향해 작은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마산행 기차를 함께 탔던 그 남자는 동료가 아닌 가족이 되었다. 벌써 40여 년 전의 일이다.(202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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