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공
어느덧 4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참으로 속절없는 시간이다. 다시 찾은 대구는 더 이상 내가 알던 도시가 아니었다. 익숙할 줄 알았던 골목도, 기억 속에 또렷했던 거리도 내 눈앞에서는 전혀 다른 얼굴로 서 있었다. 택시 기사는 참 친절했다. 이 거리, 저 거리의 이름을 조곤조곤 설명해주는데, 나는 딴 세상 사람처럼 그저 창밖만 바라보았다.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아무 생각도,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 여고 시절은 늘 배고팠다. 절대적인 가난 속에, 친구들의 새 운동화 하나에도 마음이 조그맣게 쪼그라들던 나날들. 농사일에 지친 부모님은 그저 공납금과 쌀을 부쳐주는 것만으로도 숨이 찼을 것이다. 그런 집안에서 학교를 졸업한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기적 같은 일이었다. 큰언니와 고모님이 있었기에 나는 그 벼랑 끝을 간신히 지나올 수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며 나는 대구를 떠났다. 그리고… 어느새 45년. 그 긴 세월 동안 나는 아내였고, 엄마였고, 직장인이었고, 누군가의 이웃이었지만, 단 한 번도 ‘나 혼자’로 이 도시에 서 본 적은 없었다.
중년이던 고모님은 어느덧 팔순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되었고, 갓 결혼해 새댁이었던 작은언니도 칠순을 넘겼다. 세월의 무게만큼 우리도 조용히 늙어갔지만, 모처럼 모인 배씨 딸들은 두려울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 이런 만남에 감사하며, 웃으며, 술잔을 부딪쳤다. 마음이 참 홀가분했다. 이렇게 좋은데, 왜 그동안 이런 시간을 갖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도 잠시 들었다.
반가움도 잠시, 나는 심장이 툭 떨어졌다. 끌고 다니던 가방을 택시 트렁크에 그대로 두고 내린 것이다. 택시 번호는 물론이고, 개인택시인지 회사 택시인지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가방 안에는 지갑, 휴대폰 충전기, 여분의 옷가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나의 분신 같은 노트북이 있었다. 수십 년간 써온 수필들, 메모들, 내 삶의 흔적들이 담긴 그것. "괜찮아요. 가방엔 별거 안 들었어요."라고 말은 했지만, 내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나의 모습에 모두가 어쩔 줄 몰라 했다.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모처럼 만나서 이게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도움을 청하기 위해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질녀에게도 전화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도저히 남편이 생각났지만 그의 잔소리를 생각하니 전화할 마음이 나지 않았다. 나는 당황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지금껏 무언가를 ‘혼자’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늘 누군가가 옆에 있었다. 남편이, 자식이, 직원이, 친구가.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도 없었다. 갑자기 세상이 너무 크고 무섭게 느껴졌다.
문득 예전에 친구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무조건 112에 신고해. 요즘은 앱으로도 돼.”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112에 전화했다. 경찰관은 애플리케이션 설치부터 사용법까지 친절하게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손이 떨렸지만, 그 경찰관이 가르쳐 준 대로 따라 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탔던 택시 기사의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다. 최신의 사회적 시스템을 경험한 나는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움을 느꼈다. 택시 기사는 가방을 보관 중이었고 나는 가방을 찾았다. 다시 만난 내 가방을 꼭 끌어안으며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나도 혼자서 할 수 있구나.’
조금 후,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들아, 그때 전화 안 받아줘서 너무 고마워.” 아들은 의아한 듯 웃었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혼자서도 괜찮다’는 것을 처음으로 배웠다. 늦은 밤, 낯선 도시의 한복판에서, 나는 조용히 내 삶의 또 다른 출발점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