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글 65

단풍의 삶

오늘 또 한 사람을 멀리 떠나보냈다. 많은 세월을 살다 보니 부모님을 비롯하여 다양한 사람들을 떠나보냈다. 이별에 단련이 될 법도 한데 사람을 보낸다는 것은 여전히 아프고 힘겨운 일이다. 세상에 태어나 자녀들 잘 키워서 출가시키고 천수를 누리고 자는 잠에 떠난 부모님이나 어르신들의 죽음은 참으로 축복할 일이다. 어차피 영원히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이 있다. 내가 K를 만난 것은 10여 년 전 동사무소에 사무장 발령을 받은 다음이다. 오랜 직원 생활을 끝내고 처음 간부가 되었다. 직장생활 전체를 통해서 가장 의욕이 넘치는 때였다. K는 통장으로 밝고 긍정적이며 에너지가 넘쳤다. 어떤 일이든 안 되는 일이 없었다. 나와 동갑으로 40대 후반의 활기찬 젊은이였다. 나는 겁 없이 일을 ..

나의 인생글 2020.12.02

말의 품격

코로나 19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말과 코로나19, 어느 것이 힘이 더 강할까. 둘 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 조심하지 않으면 본인의 삶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의 삶도 파괴시킨다.. 전달력이 빠르다. 다른 점이라면 코로나 19는 파괴력만 있지만 말은 사람을 살리는 힘이 있다. 어느 여성학 박사가 강연을 갔다가 유난히 얼굴이 밝고 행복해 보이는 여성에게 부부간 대화에 대해 질문을 하였다. 그 여성은 남편과 오랫동안 사귀고 결혼했는데 남편이 결혼 전에는 단정하고 매사에 조신하여 허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결혼 후에는 잘 씻지도 않고 옷이나 양말 등 아무데나 벗어던지고 연락도 없이 늦게 귀가하고 어느 집 남편과 다르지 않았다. 참다못해 하루는 대화를 하자고 하여 남편의 허물 수 십 ..

나의 인생글 2020.12.02

거제 바다이야기

텀블러에 따뜻한 커피 담고 곱게 화장도 하고 집을 나섰다. 방랑의 유전자가 흐르는지 집만 나서면 가슴이 설레고 행복해진다. 가을걷이가 끝난 황량한 들판도 정겹게 보이고 막바지에 든 단풍나무도 아름답다. 한참을 달려서 거제도 바닷가에 도착했다. 한여름의 축제가 끝난 바다는 조용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추억을 만들어 주고 저마다의 사연들에 길게 드러누운 바다! 바다도 고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아름답다. 늦가을 햇살이 물결을 비추어 은빛 보석이 동시에 빛을 발한다. 그 옛날 우리의 사연을 기억하고 있을까.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하여 3대가 한집에 사는 대가족에서 태어나 결혼 후에도 맞벌이로 시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방학 때가 되면 대여섯 명의 조카들이 우리 집으로 오게 된다. 시골이고..

나의 인생글 2020.12.02

그라스의 여인

머릿속의 지우개가 한 번씩 오작동을 한다. 지우지 말아야 할 것을 지워버린다. 남편이 여권을 잃어버렸다.. 작년 가을에 스페인 여행을 다녀오던 중 두바이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면서 여권을 두고 내렸다.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가 비행기 탑승 1시간 전에 술을 한 병 사고 싶다고 하여 면세점에 가서 알았다. 여남은 명의 일행들이 이리저리 편한 사람끼리 자리를 바꾸어 앉아서 좌석번호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국 멀리 중동 땅, 두바이에 새벽 3시에 혼자 남겨진다. 나는 깊은 갈등이 시작되었다. 남편만 남겨두고 혼자 비행기를 타야 할지 아니면 같이 남아야 할지 비행기 삯, 체류비용 등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 앞이 캄캄하다. 우선 가이드와 함께 분실물 센터에 가서 손짓 발짓 다 사용하여 간절하게 설명을 하였..

나의 인생글 2020.12.02

검둥이를 찾았다.

우리 소만 보이지 않는다. 눈앞이 캄캄하다. 어둠은 순식간에 모든 만물을 삼키고 산을 삼킨다. 같이 왔던 친구들도 처음에는 같이 소를 찾는 척하더니 어둠이 깊어지자 하나둘 산을 내려간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나 혼자 남았다. 우리 집은 할아버지 할머니 비롯하여 3대가 대대로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왔다. 우리는 몇 개의 산을 넘고 물을 건너 10여 리 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닌다. 학교 마치고 집에 오면 마을 앞산으로 소 풀 먹이로 갔었다. 마을 아이들이 떼를 지어 소를 몰고 가고 몇몇 남자아이들은 소를 타고 가기도 했다. 소는 산속으로 다니면서 풀을 뜯어먹으며 그 넓은 뱃속을 채운다. 그동안 아이들은 모여 앉아 공기놀이도 하고 때로는 격렬한 토론의 장을 펼치기도 한다. 풀냄새를 맡으며 소설책이나 시집을 읽..

나의 인생글 2020.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