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여행이란
배 현 공
90년대, 나는 두 아이를 둔 직장인 엄마였다. 나는 공무원으로 민원인을 상대하는 부서에 주로 근무하였다. 때로는 말도 안 되는 것을 요구하는 진상 민원인도 있었지만, 천성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형이라 일이 즐거웠고 나름대로 보람도 있었다. 그러나 진정한 본 업무는 시간 외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팀 단합대회가 그리도 많은지 단합대회라는 것이 늘 같은 그림이었다. 상사는 술에 취해 같은 말을 되뇌고 직원들은 눈치만 살폈다. 그때는 분위기 잘 맞추는 것도 실력으로 통했다. 업무보다 더 힘들고 고달팠다. 겨우 마치고 집으로 오면 그 사정을 모르는 시어머니는 불같이 화를 내었다. 엄마를 기다리던 아이들은 잠들어 있었다.
업무능력도 뛰어나고 인간성까지 좋아 우리 부서의 에이스로 통하던 후배 여직원이 갑자기 퇴사했다. 어느 날 야근을 하고 집으로 가니 겨우 말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가 “엄마 오늘도 술 처먹고 왔어.”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녀는 고심 끝에 아이를 생각해서 직장을 그만 두기로 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녀가 부러웠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퇴사를 생각하며 주판알을 튕겨도 아파트 대출금에 생활비 등 남편 혼자의 봉급으로는 어림없었다. 늘 머리는 무겁고 소화가 되지 않았다.
남편도 나와 생활이 다르지 않았다. 낮에는 업무, 밤에는 인간관계, 늘 자정이 넘어서 파김치가 되어 돌아왔다. 다툼도 잦았다. 서로가 위로와 격려를 원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는 삶의 무게로 지쳐가고 있었다. 무슨 방법을 마련해서라도 이 슬럼프에서 벗어나야 했다. 남편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의논 끝에 내린 결론은 여행이었다. 한 달에 한 번은 우리가 살고 있는 부산을 떠나고, 일 년에 한 번은 대한민국을 떠나는 걸로 결론을 지었다.
우리는 수십 년간 그 약속을 지켰다. 심지어 아이가 고3일 때도 여행을 떠났다. 대학 입시상담 관계로 학교에 갔었는데, 담임선생님께서 대단한 부모님이라고 하시면서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부부가 여행 중일 때 혼자 남은 아이가 늦잠 자고 오후 3시에 등교를 하였다고 했다.
유럽이나 동남아처럼 공간의 이동도 있었지만, 아프리카와 인도 여행은 마치 조선시대를 다녀온 듯 시간과 공간 심지어 인간과 동물도 초월했다. 사람과 당나귀, 소, 말 등이 함께 걷는 길이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갠지스 강에서는 삶과 죽음도 눈앞에서 경험했다. 세상은 참으로 넓고 오묘했다. 나는 마치 개구리가 좁은 우물에서 나온 듯 모든 것이 새롭고 신비로왔다.
여행을 시작한 후부터 생활에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같이 내 인생에 생기와 활력을 주었다. 퍽퍽하기만 했던 삶에 여유가 생겼다. 비행기에 몸을 싣고 구름을 뚫고 하늘 위로 올라가면 수십 층 빌딩들이 주먹만 해 보이고 고급 승용차도 개미처럼 작아진다. 저 점처럼 작은 곳에서 그토록 울고 웃고 야단법석하였구나! 하며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그려졌다.
일본 도야마에 있는 알펜루트를 여행한 적이 있었다. 산악열차를 타고 가파르게 경사진 곳을 올라갔다. 철길 양옆으로 펼쳐지는 숲속의 풍경은 마치 동화 속 장면처럼 신비롭고, 정수리까지 닿을 듯 한 산봉우리는 경외감을 불러일으켰다. 발밑에는 구름 속에 가리어져 있던 마을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아름드리나무들, 그림처럼 펼쳐져 있는 예쁜 집들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우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그 마을로 내려갔다. 마을에 내리는 순간 깜짝 놀랐다. 안개로 앞이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의 인생도 이런 것이 아닐까.’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았다. 좁은 집에서 시어머니와 아이들 삼대가 복닥복닥 살던 때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갔다. 멀리서 내려다 본 마을처럼 아름답게만 느껴졌다. 그곳을 벗어나 보지 않으면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부부간의 대화도 늘 돈 이야기, 복잡한 집안일 등 서로의 견해가 달라 답답할 때가 많았다. 여행하고부터는 여행의 주제로 대화를 하면 한없이 행복해지고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진다.
지루하기만 했던 일상이 특별했고 원망생활이 감사생활로 바뀌어졌다. 어느 여행자는 다섯 가지 복이 있어야 여행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첫째는 내 몸이 건강해야 하고, 둘째는 적당한 돈이 있어야 하고, 셋째는 가족 모두가 건강해야 하고 넷째는 집안에 우환이 없어야 하고 다섯째는 함께 여행할 동반자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이렇게 여행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들이 협력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엄마의 손길이 부족했지만, 자신의 길을 잘 헤쳐 나가고 있는 아들, 내가 끝까지 직장에 다닐 수 있도록 노구를 이끌고 아이들 잘 키워주셨던 시어머니, 나를 옭아매었던 나의 직장까지도 감사하기만 했다.
여행 중에 찍은 사진, 사소한 메모, 그리고 소중한 순간들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이러한 기억들은 일상에 지쳐 있을 때 큰 위로가 되었으며, 과거의 여행을 떠올리면서 얻었던 행복한 감정을 다시 경험할 수 있었다. 나는 또 다른 여행을 꿈꾸며, 다음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싶다. 새로운 여정에서 만날 사람들과의 이야기, 새로운 풍경 속에서의 설렘과 행복감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삶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여행은 내 인생에 있어 양념이고, 고명이며 특별 보너스였다.(2024.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