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을 반으로
배현공
어느 교무님으로부터 가정용 은빛 불전 도구 한 세트를 선물 받았다, 손바닥 높이의 촛대와 주먹만 한 목탁, 테니스 공 만한 향로, 머그잔 크기의 좌종 등 작고 옹골맞아 마음에 쏘옥 들었다, 작은 고가구 상을 구입하여 거실옆에 도구들을 올리니 제법 잘 어울렸다. 모두 나의 기도를 받쳐주는 소중한 도구들이다. 하루하루 열심히 기도하며 성불을 기원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고민이 생겼다. 향로가 향 길이에 비해 너무 작아 타고 남은 재가 향로 밖으로 떨어졌다.
향 길이 맞는 넓은 향로를 사려고 불교용품 파는 곳을 서성거렸다. 연꽃 모양의 커다란 도자기 향로를 하나 구입했다. 주변의 작은 은빛 도구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이 공간에 낯선 존재처럼 보였다. 원래 있던 은빛 향로를 도로 갖다 놓았다. 가족이 다시 만난 듯 제자리에 있는 편안함과 안정감이 있었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있을 곳에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매일 향로 밖으로 떨어진 재를 치우는 일은 번거로웠다.
어느 도반과 대화 도중 “향을 반으로 쪼개어 향로 크기로 맞추면 되겠네.” 한다. ‘그렇다’ 그러면 되는 것이다. 그 도반은 너무도 쉽게 생각해 내는 것을 나는 왜 오랫동안 고민을 했을까,
수십 년 공무원으로 살아오면서 매일 아침, 나는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업무를 처리했다. 처음에는 그 규정들이 답답한 족쇄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어느 때부터가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방패 같았다. ‘정해진 길’을 걷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게 되었다. 이를테면, 매번 나의 발걸음은 직선으로, 규칙적이고 예측 할 수 있는 패턴을 따랐다. 날이 갈수록 주변의 변화에 무감각해지고 창의성이나 융통성이라는 단어는 나에게는 생소한 개념이 되어버렸다.
그날 이후 향로에 향불을 피울 때 향을 반으로 나누어 사용했다. 작은 향로에 맞추기 위해 향을 반으로 나누는 일은 나에게 하루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 순간, 향의 길이가 자로 잰 듯 같을 때는 기분이 좋아지고, 기도가 더 깊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마치 향의 길이가 내 마음과 연결된듯하다. 두 개의 향이 같은 길이로 나란히 서 있을 때, 나는 그 균형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그러나 향의 길이가 같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런 날은 마음이 불안해진다. 내가 정한 규칙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일까? 향이 조금 길어지거나 짧아지면, 그것이 내 기도의 진실성을 해칠까 두려워진다.
나는 향과 향로 생각했다. 향의 길이가 같으면 안정감이 있어 좋고, 길이가 차이가 있으면 긴 쪽에서 더 오랜 시간 그 향기를 맡을 수 있어서 좋지 않은가.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향은 그저 나의 기도를 도와주는 도구일 따름이다. 정성과 기도는 결국 나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렇게 한마음 돌리고 보니 이 작은 변화가 내 마음을 한층 더 평화롭게 만들었다. 향로의 넉넉한 공간은 나의 기도를 더욱 깊이 담아주었고, 남은 향의 재는 바닥에 쌓이며 나의 수행을 상징하는 듯했다.
하나뿐인 아들이 이번 명절에도 이런저런 사유로 내려오지 못한다고 한다. 예전에는 가족들이 모여 조상님께 차례를 지내는 것이 당연한 일로 여겼다. 우리도 그 좁은 시골집에 20~30명이 모여 조상님께 제사를 지냈다. 제사를 지내면서 한 뿌리라는 자부심을 가졌다.
작년 명절에도 아들이 내려오지 못했다. 아들과 함께 하지 못한 명절은 모든 것이 허망하고 쓸쓸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내려오지 못하는다는 통보는 나에게 충격이었다. 나는 온몸에 힘이 빠지고 머리는 텅빈 것 같았다.
아침 기도 때 향을 쪼개면서 한 생각이 스쳤다. ‘아들이 바빠서 못 내려오면 우리가 올라가면 될것이 아닌가, 아들은 지금 젊음의 긴 터널을 건너고 있다. 끝없는 또래와의 경쟁,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늘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야 하는 부담감으로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피곤하고 휴식이 그리울 것이다. 한가한 우리가 올라가면 되는 것이다. 아들에게 통보하고 역귀성을 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오손도손 차례상을 차리는 것을 바라보니 명절은 단순히 차례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삶은 마치 한 편의 영화와 같다. 무대 위에서 우리는 주어진 대본으로 연기하지만, 그 대본은 결국 우리의 마음가짐에 따라 다르게 펼쳐진다. 우리의 마음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색깔을 달리한다. 규정 하나를 지워 버렸더니 우울하고 답답했던 명절이 즐겁고 행복한 날로 바뀌었다.
주어진 환경이나 상황이 아니라, 나의 선택과 태도가 나의 삶을 결정짓는 것이다.
지금부터는 나의 삶을 지배했던 답답한 규정의 그늘을 벗어나서 더 넓은 세상 속에서 이리저리 부 댓 끼며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싶다. 앞으로의 나의 삶은 직선만이 아니라 다양한 색깔과 형태로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