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글

아침조식 그 행복

늘 은혜로운 2024. 10. 26. 11:36

호텔 조식 예찬

 

배현공

해외여행에서 기대되는 순간 중 하나는 단연 아침 조식이다. 호텔의 넓은 식당에서 펼쳐진 화려한 뷔페는 마치 작은 축제가 열리는 듯하다. 매일 아침 가족의 밥상을 차리는 주부로서, 누군가 차려준 밥상을 마주하는 순간 가슴이 벅차오른다.

20여 년 전 우리는 4쌍의 부부와 함께 강원도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직장에 휴가를 내고 떠난 34일의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할 귀한 기회였다. 강원도의 아름다운 풍경이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동안, 우리는 각자의 소소한 삶을 공유하며 더욱 가까워졌다.

관광지를 돌아보며 한껏 들떠 있었다. 하지만 사실, 관광지의 화려함보다 더 끌리는 것은 피곤한 일상에서 벗어나 누군가가 정성껏 차려준 밥상이다.

함께한 여성들은 일상에서 집안일로 바쁜 삶을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남이 차려주는 맛있는 식사와 깨끗한 숙소에서 편안히 쉴 수 있다는 사실에 모두가 크게 기뻐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눈앞에 차려진 정갈한 식사와 우리의 손을 거치지 않은 깨끗한 숙소는 작은 사치였고 기쁨이었다. 계획했던 여행이 끝났는데도 귀가할 마음이 없었다. 나를 제외한 전원 일치로 하루 더 머물기로 결정되었다. 나 역시 더 머물고 싶었지만,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했고, 혼자 부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난감했다. 결국 어렵게 하루 더 휴가를 얻어낸 적이 있었다.

이번에 종교단체에서 함께한 베트남 여행은 기대 이상의 경험이었다. 그중에서도 아침 조식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여행지의 화려한 식단은 언제나 흥미롭지만, 이번 아침은 또 다른 요소가 더해졌다.

여행의 첫째 날, 나는 조심스럽게 드레스를 꺼내 입었다. 거울 앞에 서자, 왠지 내 모습이 낯설었다. 아침 식사를 위해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우아한 자세로 테이블에 앉았다. 이 순간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줌마가 아닌 백작의 귀부인이 된 것 같았다.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비추는 넓고 아늑한 공간에서 피아노 소리가 새소리처럼 맑게 울려 퍼졌다. 피아노의 선율은 조용한 공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손님은 우리 일행 세 명뿐. 나머지 테이블은 텅 비어 있었고, 고요함 속에서 멜로디가 울려 퍼졌다. 그 순간, 마치 우리 일행 세 사람만을 위한 독주회에 초대받은 기분이었다. 손님이 거의 없는 고요한 공간에서, 피아노의 음색은 더욱 깊고 풍부하게 울려 퍼졌다.

피아니스트는 챙이 넓은 모자를 눌러쓴 30대 중반의 남성이었다. 그는 마치 세상을 잊은 듯 그의 손가락은 피아노 건반 위를 종횡무진했다.

이 순간만은 모두가 나를 위해 존재한다. 화려한 뷔페의 다양한 음식들은 나를 위한 조연들이고, 그 중심에 서 있는 나는 명실상부한 주인공이 된다. 크루아상, 팬케이크, 신선한 과일, 그리고 따뜻한 커피가 테이블 위에 놓일 때, 세상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준비된 것처럼 느껴진다.

그 피아니스트는 쉴 새 없이 아름다운 선율을 선물했다. 손님도 우리밖에 없고 몇 곡만 연주하고 끝나겠지, 하며 한 곡 한 곡 할 때마다 이 곡이 마지막일 거로 생각했다, 그와는 달리 연주는 계속되었다. 음표마다 그의 마음과 열정 담겨 있었다. 연주자는 마치 우리를 위해 세심하게 곡을 선택하는 듯, 더 깊은 감정을 담아 연주했다.

그의 노고에 감사를 전하고 싶었다. 나는 지폐 한 장을 꺼내 조심스레 다가갔다. 그와 눈빛이 마주쳤을 때 살포시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어떤 이는 예술가의 자존심을 건드린다고 하였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았다. 당신의 연주가 나에게 얼마나 큰 행복감을 주었는지 작은 성의라도 표현해주고 싶었다.

평소에도 내 입맛에 딱 맞은 맜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는 000 요리가 특별히 맛이 있었다고 덕분에 식사 시간이 행복했다고 표현해 준다. 그 맛있는 음식 속에는 그 요리를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요리사의 정성과 열정이 담겨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 피아니스트도 오늘의 훌륭한 연주가 있기까지는 피나는 자신의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몇 명 안 되는 손님이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나의 순수한 마음이 그에게 전해지길 바랐다.

아침 식단은 화려하고 다채로웠다. 나는 마치 신데렐라가 된듯했다. 시간이 지나면 본연이 나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서글프지만, 한 모금의 커피와 함께 어우러지는 음색은 여행의 여운을 길게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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